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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뉴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

1979년 청와대 나와서 다시 입성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정책과 공약대결이 아닌 보수와 진보의 확연한 컬러로 선거가 치려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단절 하고 지난 총선에서 보수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개혁 정책이 국민에게 균형적인 정치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박정희 향수와 보수 회귀 심리를 자극하면서 문재인 후보에게는 참여정부 실패의 책임을 물었고, 문재인 후보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 됐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앞으로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 이명박 정부 정책과의 차별, 중산층 복원, 임시직에 대한 문제,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비롯한 선거기간 공약한 대학등록금 반값실현 등 재원마련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숙제를 안고 출발하게 됐다.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후보는 1979년 11월 28살 당시 동생들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다시 청와대의 주인자리를 차지했다.

 

 

대통령의 큰 딸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20대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하면서 부모를 잃었던 집으로 대통령의 신분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박근혜 당선자는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 셋집에서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1년 아버지인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주도한 5·16 군사정변이 일어 났고, 박정희 소장은 1963년 5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학 졸업 후 박 당선인은 프랑스 유학시절 어머니 육영수는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국립중앙극장 단상에서 조총련계 문세광에게 저격당해 서거하여 귀국했다.

 

22세의 박근혜는 어머니를 대신해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을 맡아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외국사절을 영접했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 만찬석상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9일간의 국상을 치룬 그는 1979년11월 근령, 지만 두 동생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5공화국 시절 영남대재단 이사(1980년)와 육영재단 이사장(1982년)을 맡았으며, 19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40대에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지원하면서 정치를 시작 1998년 4월 재보선 때 대구 달성에서 당선된 박 당선인은 15년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서며 ‘선거의 여왕’ 역할을 했다.

 

2007년 대선 도전에서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당시 박 당선인은 경선 결과에 승복하며 5년 후를 약속하게 된다. 이때부터 5년 넘게 일명 박근혜 대세론을 끌어오다 2012년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동북아 정세 급변과 세계 경제 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여성 최초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