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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규시장칼럼] 포은 정 몽주 선생

당장 목전의 이익이 된다면 의리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요즘의 세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 몽주 선생의 시조 '단심가(丹心歌)'이다. 이 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응답의 시조이다.


지난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포은 정 몽주 선생의 선영(묘역)에서 열한 번째 '포은 문화제'가 개최되었다. 나는 추모 제례에 초헌관으로 참례하는 광영을 누렸다. 날싸까지 청명하여 행사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문화원 을 비롯하여 용인시 문화가족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말씀 드린다.


'포은 문화제'는 문광부에서 '역사인물 콘텐츠 부문'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화제는 추모제례, 전국 학술대회, 한시 백일장. 포은 선생 천장(遷葬)행렬 재현, 포은 선생 상산제 등은 선생의 위업을 조명하기 위한 행사이다.


용인시가 충절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연유가 포은 정 몽주(1337~1392)선생이 계시고 조선조 중종 시대의 도학 정치 의 개혁가인 정암 조 광조 선생으로 이어지는 명현이 사후에 용인에 모셔진 까닭이다.

 

'모현면'이나 '상현동'이라 지명도 모셔진 선현과 연관이 있다. 포은 정 몽주 선생께서는 고려 충숙왕 6년(1337) 12월 22일에 부친 운관(云瓘)과 모친 영천 이씨(永川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포은 정 몽주 선생은 경북 영일현 문충리에서 태어나 성장한 곳은 영천군 동우항리라고 '연일 정씨사적집'에 기록되 어 있다.

 

포은 선생은 2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많은 관직을 제수 받으면서 뛰어난 능력과 학덕을 인정 받아 나중에는 벽상삼 한 삼중대광 수문하시중 판도평의사사 병조상서시사 영경영전사 우문관대제학 익양군 충의백에 봉해지는데 그 때가 고려 공양왕(1390) 2년이다.


당시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 포은 선생께서 이룩한 주자 성리학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추앙을 받게 된다. 포은 선생께서 기울어져 가던 고려국을 지키려 절치부심할 때 때마침 말에서 낙마하여 부상을 입고 병석 에 누워있던 이 성계 장군의 문병을 가게 된다.

 

그 때 이 방원이 차려 놓은 술상을 마주하고 읊은 시조가 이 방원의 '하 여가'에 대한 답으로 읊은 시조가 '단심가'이다. 포은 선생은 귀가 하던 도중 선죽교에서 이 방원의 문객 조 영규가 휘 두른 철퇴에 맞아 절명하였다. 그 때가 공양왕 4년 선생의 나이 향년 56세였다. 3개월 뒤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 운 왕이 등극한다.


포은 선생은 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목숨을 던져 지킨 후세의 사표가 되는 만고의 충신이다.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서, 정치가로서 외교관으로서 펼친 경륜과 학덕은 임금과 백성에 이르기 까지 존경과 추앙을 받고 영세불망의 충신으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계시다.

 

 

전국에 16개소에 거쳐 서원과 사우에 포은 선생께서 배향되어 봄 가을에 유림에 의해 제향이 올려지는데 용인시에 는 '충렬서원'에 배향되어 계시다.


당시 포은 선생과 관련한 구전 설화가 있다. 포은 정 몽주 선생께서 돌아가신 후 개경에서 남쪽을 향해 운구하던 중 풍덕내(풍덕천동)을 지날 때 명정(상여 앞에 들고 가는 기)이 돌풍에 날아가 떨어진 곳이 현재 선영이 있는 곳(능원리) 이라고 한다. 후손은 명정이 떨어진 자리는 포은 선생의 뜻이거나 하늘의 계시로 알고 그 자리에 묘소를 설치하였다 고 하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물질에 지배당하고 명리에 집착하는 인간 군상이 많은 오늘의 사회 현상을 생각할 때 포은 정 몽주 선생의 충절과 숭 고한 정신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나에게 당장 목전의 이익이 된다면 의리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 요즘의 세태다. 자기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공직의 사명과 본분을 잊은채 해서는 안 될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세태를 만약 선생께서 보고 계시다면 개탄하고 통분하실 것이다.

 

 

인성교육은 도외시한채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사회 풍 조가 낯 뜨거운 일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염치지 심(廉恥之심)'을 가진 사람 대하기가 드물다. 인성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아지는 것같다.

 


요즘 회자되는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재물, 이성 문제, 명예(권력)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과오가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도 어리석은 측면이 있어서 일까... 그릇된 행태가 반 복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포은 정 몽주 선생의 학덕과 지조가 더욱 그리워지는 소이일 것이다. 캄캄한 밤일수록 별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이치와 같은 것이리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