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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소강석목사 ] 도루묵 신앙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궁궐을 떠나 피난길을 갔지 않습니까? 피난길이라 아무리 임금님 밥상이라 하더라도 식량이 귀하던 때이기 때문에 수라상에 고기 하나도 없고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백성이 묵이라는 물고기를 임금님께 바쳤습니다.

 

오랜만에 생선을 먹어보니 그 맛이 천하일품이었습니다. 맛이 너무나 기가 막혀 임금님은 그 맛에 탄복을 해 가지고 물고기 이름을 은어라고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물고기의 맛과 묵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다 끝나고 선조는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선조는 피난길에서 먹었던 그 은어의 맛이 떠올랐습니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빨리 그 은어 요리를 진상해 오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산해진미로 입맛이 길들여진 선조에게는 그 물고기가 맛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궁궐에서 다른 음식과 같이 먹어보니 그토록 맛있었던 은어의 맛은 영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그 고기를 다시 도루묵이라고 불러 버리라고 명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 저는 바쁜 일정 속에서 군선교 관계자들에게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 주었습니다.

 

 

저를 찾아온 외면적 동기는 군선교신문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만 내용은 달랐습니다. 이번에 군종목사들 수련회를 후원해 주고 인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곤지암에 있는 소망수양관에서 하게 되는데 지금 리모델링을 하고 있어서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면 돈도 많이 안 드는데 갑자기 장소를 구하려고 해도 날짜와 장소가 맞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 콘도를 빌려 가지고 아예 숙식을 하면서 수련회를 하려고 하는데 저희 교회가 그 경비를 부담하고 저더러 2박 3일 강사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군선교는 완전 영적 전쟁이고 치열한 전투인데 갈수록 군종목사들의 신앙과 사역의 태도가 너무 해이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도권에서 사역을 하다보니까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더러 그런 해이해진 군종목사들의 심령의 묵은 땅을 기경해 주고 밭을 갈아 엎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뛰고 울먹거렸습니다.“지금 군선교 현장이 얼마나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인데 행여라도 군종목사님들이 직업의식에 빠져 사역을 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어디 군종 목사님들뿐이겠습니까? 일반 민간 목회를 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도루묵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소명감이 결여 되어 버리는 것을 도루묵 신앙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나 목사가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 성도도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이라면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그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넘치는데요. 하물며 주님으로부터 목사의 소명을 받고 선지 동산에 문을 두드릴 때에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는 얼마나 황홀한지 주님이 애인처럼 느껴지던 애틋함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더 깊이 만나보고 싶어 채플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얼마나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면 주님께서 금방이라도 달려오셔서 나를 안아주실 것 같은 생동감과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울먹임과 감격으로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빛바랜 종이처럼 점점 퇴색되어 가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주님 보다는 사람을 보고 세상을 대하고 물질을 대하면서 칼라빛 총 천연색의 사랑이 구겨진 흑백사진처럼 변해 가는 것입니다. 제도권에서 시달리고 그저 경쟁하며 살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군종 목사들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사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 때가 되면 승진에 신경을 써야지요, 또 나 보다 못한 사람이 승진을 하게되면 얼마나 의기소침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군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오래 사역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 자신을 바라봤을 때 오히려 제가 더 부끄러웠습니다.“아, 나는 얼마나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첫 사랑의 감격과 기쁨이 있단 말인가.” 옆에서 함께 이야기 하는 이종민 목사님이“우리 담임목사님은 지금도 처음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러나 이목사님이 나의 첫 사랑의 시절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물론 지금도 저는 첫 사랑과 첫 열정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 집에서 쫓겨나서 신학교를 다니던 그 때의 순수함과 감격과 울먹거림이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 보았을 때 나를 향한 안타까움도 생겼습니다. 저도 어느새 사람을 대하고 물질을 대하면서 형식과 의무감의 껍데기들이 거북이등처럼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나도 도루묵은 아닌가, 내가 도루묵 신앙의 주인공은 아닌가.” 그래서 제 스스로 도루묵 신앙을 깨트리기 위해서 군종 수련회를 다시 적극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까짓것 우리가 경비 후원을 하더라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도 새롭게 말씀을 준비하고 저부터 도루묵 신앙을 깨트려 버리기 위해서, 그리고 도루묵 신앙으로 돌아가 버린 군종목사들을 다시 한 번 첫 사랑의 열정과 소명의 감격으로 다시 한 번 깨트려 버리고 싶은 도전과 욕망을 갖고 싶었습니다.

 

 

아니, 제 자신부터 이제는 부정적 도루묵이 아니라 주님을 영원한 애인처럼 느끼기만 했던 첫 사랑의 그 모습 그대로 도루묵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시 첫 사랑, 첫 열정으로 돌아가는 그 도루묵 신앙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