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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오늘도 난 캔버스에서 즐겁게 자유로운 놀이에 빠져든다”... 하정현 작가의 동화 같은 이야기

작품에 있어 완성은 없다. “과정이 완성이고, 완성이 과정이다”
모든 작업은 “‘작가 노트’를 통해 언어로 표현돼야...”

서울에 부는 예술 바람. 지난 9월 2일 프리즈·키아프 전시에 VIP를 비롯한 수많은 관객이 몰렸다. 프리즈 측은 서울 행사 기간 중 약 7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점은 젊은 콜렉터들의 등장으로 예술이 대중 앞에 섰다는 점이다.

 

더불어 BTS(방탄소년단) RM의 취미 생활인 ‘미술감상’은 예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RM이 다녀간 미술관마다 관람객으로 가득 찬다. ‘RM로드’란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그가 예술계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은 ‘국내 문화재 보존’을 위해 매년 1억 원을 몰래 기부한 행위가 알려지면서 MZ세대를 미술관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갤러리이든에서 시대를 이끌어 갈 청년작가발굴 두 번째 프로젝트로 준비한 하정현 작가 전시. “오늘도 난 캔버스에서 즐겁게 자유로운 놀이에 빠져든다.”며 수줍고 맑은 눈과 차분한 말씨로 시작한 인터뷰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화가 하정현의 작품 세계는 유리구슬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가 구현하는 작품 세계는 색채와 재료를 지우고 덧칠하며 수십 겹의 세상을 켜켜이 쌓는 고단한 작업이다. 무거운 철학을 담아내기보다 순수한 ‘영(靈)’을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해야 어울릴 듯하다.

 

하정현 작가의 어릴 적 별과 아들 정후의 별이 오버랩 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삶의 추억을 쌓은 작품. Draw without drawing 124(사진=갤러리이든 제공)

▲ 하정현 작가의 어릴 적 별과 아들 정후의 별이 오버랩 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삶의 추억을 쌓은 작품. Draw without drawing 124(사진=갤러리이든 제공)

 

하 작가의 이력은 이색적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도자예술 학부로 입학해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 한 후 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서양화가의 길로 나섰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성대학교 부설 디자인아트 교육원에서 겸임교수로 그래픽 디자인 관련 강의를 하는 그가 누구의 영향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는지 궁금했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조소를 전공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을 통해 나로부터 출발하는 전환점에 관한 영향을 받았다”며 “세상 모든 틀을 깨고 나가고 싶어 경계를 허무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난 이거야. 작품활동이 내 길이야. 멈출 수도 없고, 멈추고 싶지 않다”

 

그의 작품활동은 성실과 꾸준함에서 시작된다. 모든 작업을 ‘작가 노트’를 통해 언어로 표현하고 스스로 “내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면서 “언어와 작품은 궤를 같이한다”고 말했다.

 

문득 지난 2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서울 프리즈(Frieze)에서 관람한 바스키아의 ‘오리’가 하정현 작가의 작품과 오버랩 된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바스키아의 영향을 받은 걸까? 그의 작업엔 오토마티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전시된 작품 중 124번 작품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말하는 하 작가.

 

“대형작품임에도 삽시간에 행복하고 즐거운 흔적을 캔버스에 옮겨 놓을 수 있었다”며 “내가 어릴 적 별을 보던 과거와 현재 아이와 함께 앞마당에서 별을 보며 느낀 사랑의 감정들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소중한 순간을 담아낸 작업이었다”고 말하며 배시시 웃는 그의 표정에서 ‘순수’에 감염된다.

 

흔히 ‘논다’는 표현은 가볍다. 하지만 하정현 작가는 ‘논다=감사하다’로 이해한다. 어릴 적 교사로 지낸 어머님을 대신해 그는 외가에서 외조부모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 특히 당시 미술을 전공한 이모의 영향으로 이젤, 파레트, 석고상 등 미술과 연관된 도구와 이모가 당시 선물한 ‘세계명화전집(도판)’ 8권은 그가 작가로 성장하는데 큰 양분이 됐다고 한다.

 

하정현 작가가 늘 영감을 얻는다는 아들 정후와 Snip 시리즈 작품 앞에서. (사진=심석진 기자)

▲ 하정현 작가가 늘 영감을 얻는다는 아들 정후와 Snip 시리즈 작품 앞에서. (사진=심석진 기자)

 

놀이로부터 작품을 끌어내는 그의 그림은 때 묻지 않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는 “고뇌하며 작품에 메시지를 담는 분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솔직히 난 그런 작가들이 부럽다. 하지만 내 작업은 삶을 솔직히 드러내는 과정이며, 어릴 적부터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과 지금도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내 삶을 작업에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동반자가 있다. 올해 7살 난 아들 ‘정후’다. 아이의 거침없는 표현과 끝없는 상상력을 통해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며, 어른과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가끔 툭 던지는 한 마디 “엄마, 더 확확해”라는 말에 용기를 얻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그다.

 

“완성은 없다”고 말하는 하 작가. “작품에 있어 완성은 없다. 과정이 완성이고, ‘완성이 과정이다.’ 인생도 많은 순간이 겹쳐져 덩어리를 이룬다. 작품도 같다. 놀이의 흔적들을 겹치고, 쌓고를 반복하면서 작업에 인생을 쌓아간다. 노는 행위를 만끽하며 여러 시간을 쌓고, 지우고. 그 흔적을 겹치듯 나타내고, 표현하는 과정이 나의 그림이다”라며 말했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각각의 재료들을 사용해 칠하고, 붙이고 그어대며 자아의식을 표출하는 자신만의 조형 언어에 집중한다. 따뜻하고 밝은색의 낙서와 같은 표현은 자신이 사랑받고 자란 유년의 추억과 유년을 함께하는 아이와 ‘놀이’라는 언어로 해석하는 작업이다.

 

하 작가는 “경지에 오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이 순수하고 맑은 인생을 살아야 원하는 결과로 남겨질 것이다”라며 “작품은 곧 나다. 거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다. 끊임없이 나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의 계획을 들었다.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 작품의 개수일 수도 있고, 레이어를 많이 쌓는 작업일 수도 있다. 그 중심에 ‘성실함’을 쌓아가는 게 내 바람이다”며 “영역을 뛰어넘어 장점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통해 기본의 깊이를 더 쌓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청년작가 발굴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는 ‘갤러리이든’ 설에덴 대표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60억분의 1인 ‘낱개’ 하정현이란 사람을 인터넷 바다에서 찾아내 멋진 무대에 세워 주셔서 신나게 놀면서 원 없이 작업했다”며 “저 보다 더 훌륭한 작가들이 갤러리이든에서 펼치게 될 전시를 기대한다”고 마음을 전했다.

 

 

 

한편 갤러리이든 설에덴 관장은 하 작가의 작품에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초현실주의 회화’ 창작자 내면의 정신 혹은 감정적인 상태를 그대로 화폭에 재현한다는 면에서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평했다.

 

‘하정현의 낱개들: Pieces of Her’ 전(展)은 지난 16일부터 서울 송파동 갤러리이든에서 오는 10월 8일까지 열린다.

 

『맑고 투명한 인터뷰 중 하 작가의 눈물을 봤다. 외조부모님의 ‘죽음’을 보며 “나와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나의 인생을 허투루 채워서는 안 된다”라며 “더 재미있게 놀고, 더 많은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그의 이야기는 성실함이 기본이 돼야 하는 메시지로 들린다』